5월의 어느 날 나는 베를린의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lerie)에서 전시 중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들을 관람했다. 전시는 리히터 화백이 기증한 100점의 작품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가 시도했던 다양한 형식의 그림들이 종류별로 전시돼 있어서 리히터의 작품 세계를 전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회화라는 예술 형식을 근간으로 하지만 회화의 전통적 양식을 초월한 다양한 실험적 시도가 구현되고 있었다. 그가 시도했던 사진 회화(프로젝터로 투영된 사진을 모사한 뒤 리터치한 회화)에서는 단순히 사진 같은 사실화라면 그냥 지나쳤을 개별적 이미지가, 리터치를 통해 추억을 소환하는 보편적 의미로 승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회화의 프레임 위에 거울을 입힌 작품은 관객 스스로가 그림을 보는 자기 자신을 바..